대학교 때는 서점에 자주 다녔다. 책을 좋아해서는 아니고, 주로 잡지를 읽는 데 재미를 붙여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다가 왠일인지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의 어느 날에는 컴퓨터 서적 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제목만 봐도 겁부터 나는 책들이 대부분인이었는데, 멋진 이름의 책 한권이 내 눈길을 끌었다.

"델파이3"

책을 펴서 몇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이쪽하고는 친해지기 어렵겠어." 다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머리글을 읽어봤다. 머리글도 잘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책의 필자가 열렬히 델파이를 찬양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컴파일 속도, 쉽고 빠른 개발 등등을 언급하며 델파이가 최고의 프로그래밍 도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귀가 얇은 편이다. 델파이를 익히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데 이게 또 쉽게 빠르다고 하니, '프로그래밍을 배워볼까?'하는 생각이 동했다.

그 생각이 든 후로 몇달이 지나서야 서점에서 거금을 들여 두꺼운 델파이 책을 하나 샀고, 두달동안 책을 가지고 이리저리 씨름을 한 끝에 델파이 컴파일러가 있어야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접한 이후에는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VB6, C, C++, C#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취미로 공부했다. 그 덕에 전공(산업공학)과는 상관없이 프로그래머로 일자리를 얻게 되고, 2003년과 2005년에는 C# 책을, 2006년에는 C++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됐다.

프로가 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히는 재미로 살았는데 프로로써 일을 하면서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틈이 별로 없었다. 프로그래밍 말고도 프로로써 일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회사로 옮기면서 Java를 익힌 것이 유일한 대학을 졸업한 이후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한 경험이다.

프로그래밍도 재미있지만,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요즘 들어서야 그 즐거움을 다시 되찾아올 생각을 하게 됐다. 여유가 생겨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마음이 간절해서다. 어떤 언어를 익혀볼까 고민하다가, 파이썬을 골랐다. 파이썬을 고른 이유는 ... 없다. 그냥 파이썬을 골랐다. 파이썬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코드 블록을 구분하기 위해 들여쓰기를 한다는 것과 동적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것 두 가지 정도다. 그러고보니 나는 동적 프로그래밍 언어가 뭔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다.

오늘부터 파이썬을 공부하며 기록을 차근차근 남기려 한다. 어쩌면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고, 잘되면 이것도 출판물이 될 수도 있겠다. 아니 출판에 대한 생각은 잊자. 나는 크게 계획하면 금방 실망하는 타입이니 공부 자체를 망칠 수 있다.

그냥 즐겁게 파이썬을 즐겨보자.

하악하악.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